우연한 시간여행
<우연한 시간여행>, 2020-11-22부터 2020-11-30까지.
최근 신경써야할 여러 일들이 겹쳐 몸과 마음이 스스로 견뎌내기 힘든 지경까지 지쳤었다. 무기력했던 나를 이끌고 급한 불을 끈 후, 어떻게 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도망치듯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는 항상 좋은 기억이 있었던 장소였기에, 제주도를 생각한 직후 비행기 표를 끊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숙소에서 1박을 하고 두 번째 날, 우연히 찾은 함덕 근처 카페에는 '우연한 시간여행'이라는 카피가 적혀있었다. 5일차인 오늘도 이 카페에서 사진 정리를 하고 글을 쓰고 있는걸 보아하니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약간의 아지트가 되어준 느낌이다. 카페에서 여유를 찾는 동안에는 바깥 일들을 신경쓰지 않게 되고,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우연한 시간여행'이라는 카피가 꽤 인상깊게 다가왔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제주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라이딩하는 것이었다. 바이크를 하루 빌려서 제주도를 한 바퀴 조금 안 되게 돌았는데, 고개를 돌리면 한라산이 보이고, 다시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도 인상깊었다. 게다가 라이딩했던 어제는 날씨도 무지 좋고 따뜻했다. 좋은 풍경이 보이면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고 다시 목적지로 향하는 여행 방식도 스스로와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지가 다가오고 있는 겨울이라 그런지 오후 5시만 되어도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숙소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 저녁을 먹은 후, 글을 쓰기도 하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채팅으로 떠들기도 했다. 잠들었다 일어나기 전까지 밖은 완전한 어둠이지만, 안에서는 우리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반대로.
스스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관성의 법칙마냥 어느 순간부터 내가 달리고 있는 속도를 망각한 채 가속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속도를 언젠가는 넘어서게 되고, 마치 '넘어져 주저앉아 흐느껴 울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때 잠시 멈추었다 가야하는데, 다행히 이번 여행이 굉장히 좋은 '멈춤'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본인에게 맞는 '멈춤'이 있을 것이다. 우연한 시간여행을 하든 다른 방법이 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