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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하나 컴퓨터박물관 방문 후기

제로하나 컴퓨터박물관은 제주시 노형동에 있었던 개인 컴퓨터 박물관이다. 이름의 '제로하나'는 20세기 컴퓨터의 태동기 시절 제주도 전역에서 활동했던 컴퓨터 연합동아리의 이름이라고 한다. 많이들 알고있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과 달리 개인 박물관이라 그런지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작년 겨울에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이 박물관의 존재를 친구가 소개해준게 박물관에 대한 어렴풋한 첫 인상이었다.

'있었던'이라고 표현했던 이유는 지금은 그 박물관이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어려움으로 박물관 운영은 2021년 12월부터 종료되었다. 11월 29일 저녁 그 친구가 박물관의 폐관 소식을 전해오면서, 다음 날 당일치기로 박물관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앞뒤로 일정이 빡빡했지만 묘하게 홀렸다. 새벽 다섯 시 김포공항을 가서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하여 고기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바로 박물관으로 향하여 박물관을 탐방하였다. 함께한 사람들이 모두 컴퓨터를 좋아하거나 추억이 있었던 사람이라 그런지 거의 두 시간동안 구경했다. 더 놀라웠던 점은 작동 방법만 안다면 켜져있는 컴퓨터들은 모두 다뤄보거나 프로그래밍(!)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물관의 수많은 소장품만큼 관심이 갔던건 곳곳에 꽂혀있는 책이었다. 소장품의 출시 년도와 일치하는 연대기들은 그 시대 사람들이 컴퓨터를 중심으로 모이고 이야기를 나눈 그대로를 전달해주고 있었다. 2000년대 초에 컴퓨터를 처음 접해보곤 했을 때 들었던 순수한 호기심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제로하나'의 연대기와 곳곳에 숨어있었던 동아리 월간지를 보면서 동아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었던 부분도 있었다. 2020년대의 컴퓨터는 그런 미지의 인상이나 순수함, 풀어야 할 퍼즐과 같은 느낌은 더 이상 주지 않는다. 다만 그저 우리의 일상 속 도구가 되어버렸고, 우리가 컴퓨터를 대하는 자세 또한 그렇게 변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데려다 키우시는걸 보아하니 박물관을 운영하셨던 분은 앞으로도 행복하게 사실 것 같다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