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다과, 그리고 천체관측
2019년 KUAAA 연간지인 <고천> 에 기고한 글입니다.
별을 좋아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던 2017년 초여름, 누군가의 이끌림에 따라 쿠아에 입부한지 만으로 2년이 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이와 신분상의 한계로 쿠아 활동을 오래 하지 못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본인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니 꽤 많은 걸음을 걸어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덧 그렇게 쿠아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던 동시에 커피와 다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회사에서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많이 마셨던 탓도 있었고, 카페를 자주 다니는 탓도 있겠다. 경치가 좋은 곳을 왕래하여 사색하는것을 즐기기에 즐겨 찾던 카페에서 어느덧 '커피와 차의 맛'이라는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커피 내리는 법을 알게 되었고 홈카페도 시도해보게 되었다. 커피와 다과도 어느덧 내 취미생활의 한 켠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천체관측이라는 다른 커다란 한 부분과 잘 섞인다는 느낌은 사실 잘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커피를 비롯한 다과 문화와 천체관측은 직관적으로는 아주 다른 취미활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이 둘은 사실 잘 어울린다. 먼저 커피에 한정한다면, 천체관측을 하기 위해서는 밤을 새어야 한다. 밤을 새기 위해서는 보통 커피를 찾게 된다(이는 평소에 커피를 즐겨찾지 않는 사람인 경우에도 해당이 되곤 한다). 비정기 관측회를 떠나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기 전, 근처 문을 닫지 않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가는것은 사실 익숙하다. 게다가 겨울에 따뜻한 커피라면 손도 녹여준다! 두번째로, 분야 내에서 개인의 호불호 내지는 취향이 명확하게 갈린다. 어떤 사람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라떼를 좋아하는것처럼, 어떤 사람은 일주 촬영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은하를 안시관측하는 것을 좋아한다.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뉘듯 좋아하는 별자리 내지는 항성도 개인차가 있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공통점으로,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와닿는 면이 있다. 무슨 감성팔이냐 할수도 있겠지만, 좋은 관측지에서 보는 별자리와 은하수의 인상은 우리가 좋은 카페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활동이랑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사실 커피와 차를 즐기고 어느 정도는 관심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커피나 차를 마시지 않거나 이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천문 정보와 다과 문화에 관련된 정보를 양방향으로 은유하여 표현해보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이 글이 다과와 천문 둘 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와 감동을 주고, 둘 중 하나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접해보지 못 하였던 새로운 분야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카페와 좋은 관측지
좋은 카페를 찾아 차 한 잔을 머금는 것은 날씨가 좋은 날 좋은 관측지로 떠나 수많은 별자리들을 눈동자에 머금는 것과 비슷하다. 도대체 천체관측을 하는 것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게 어떻게 비슷할 수 있을까 한다면, 장소와 접근성의 측면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좋은 관측 장소는 다 다르다. 대표적으로 안시 관측이나 딥 스카이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장소와 일주, 별자리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장소가 서로 다르다. 각 관측지마다의 특성(구도, 광공해의 양, 지리적 접근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관측지는 없을 것이다. 커피와 차를 파는 카페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카페는 좋은 경치가 특장점이고, 다른 카페는 맛있는 커피나 훌륭한 디저트가 특장점이다(물론, 다과의 맛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쿠아에서 자주 방문하는 관측지들 중 가장 자신의 마음에 드는 관측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주 갔었던 카페를 떠올려본다면 분명 그 중 내 취향에 꼭 맞는 카페가 하나쯤은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커피와 다과를 즐기는 것이 천체관측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접근성이 아닐까 싶다. 천체관측은 할 수 있는 타이밍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일단 날씨가 좋은 날에만 할 수 있다. 하늘을 구름이 덮어버린다면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달이 너무 밝지 않은 날을 골라야하기 때문에 한 달의 3분의 1 정도가 그냥 날아간다(혹은, 달을 관측하면 된다). 그렇게 한 달의 나날들을 지우다 보면 정작 남는 날이 얼마 없게 된다. 반대로, 차나 커피는 아무때나 마셔도 된다. 달이 밝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이, 원하는 때에 카페를 가면 된다.
천체관측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수많은(그리고 비싼) 촬영장비와 광학 기기들을 소유하여야 한다. 또한 이들을 어두운 관측지까지 옮겨줄 수 있는 차와 운전 능력도 필요하다. 이도 천체관측의 접근성을 알파 센타우리 쯤으로 보내버리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사실 커피와 차를 즐기는 것도 욕심이 생기면 비용이 들기 시작한다. 홈 카페를 해보기 위한 각종 장비를 장만하는 비용부터,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기 위한 원 데이 클래스까지, 돈이 필요한 곳은 차고 넘친다.
좋은 커피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일반적으로 커피의 맛은 다음 다섯 가지 척도로 분석한다.
- 산미 (Acidity)
- 쓴맛 (Bitterness)
- 단맛 (Sweetness)
- 아로마 (Aroma)
- 바디감 (Body)
처음 간 카페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맛을 음미하는 경험을, 쿠아에 입부하여 첫 관측회를 떠나는 경험에 빗대어 표현해 보겠다. 모두 쿠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파릇파릇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쿠아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떠나는 관측회다. 공주에 위치해 있는 충남교육연구소라는 곳으로 간다고 하는데, 처음으로 별을 본다고 하니 기대가 많이 된다. 날씨 예보도 다행히 좋다고 하더라. 가는 여정이 꽤 복잡하지만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세 번정도 있다는게 조금 놀랍긴 하지만 뭐 목적지까지는 잘 도착한 것 같다. 도착한 곳에서 짐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카레를 먹었는데 고기가 좀 많은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다 보니깐 밖은 캄캄해졌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이 참 많았다. 이게 진짜구나. 별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처음 보는 선배분이 카메라를 쥐어주신다. 그리고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쳐주는데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난다. ISO라는 말이 기억에 좀 남긴 하지만… 그래도 그 날 찍은 별 사진은 너무 예뻐서 카톡 커버사진으로 해놓긴 했다. 별 사진을 찍다가 좀 추워서 숙소에 들어가서 자다가, 다음 날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카페에 대입해 보자. 위에서 서술한 '커피의 맛'을 밤하늘의 별에서 받았던 인상에 대입한다면, 이를 제외한 나머지(고기맛 카레, 뜸한 버스 등)는 '카페의 분위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카페를 평가하는데에 커피(또는 차)의 맛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카페의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카페의 외부 경치, 내부 인테리어, 직원의 친절도 등의 수많은 기준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며, 이러한 요소들 중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전체적인 인상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만약 관측지에서 먹었던 저녁의 카레가 타거나 밥이 덜 되었다면 그러한 결점들이 특히 인상에 남을테고, 이는 카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산미와 쓴맛은 커피를 마시면서 혀로 느낄 수 있는 지배적인 맛이다. 이 둘의 밸런스가 잘 잡힌 커피는 대체로 무난한 인상을 주지만, 둘 중 하나가 더 우세하다면 호불호가 많이 갈리게 된다(어떤 사람은 신 커피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커피의 온도가 아주 뜨겁지 않다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척도를 천체관측의 요소에 빗대기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게 있다면 천체관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로 하는 행동(안시 관측과 사진 촬영 중)과 그 대상(별자리, 성운, 성단, 은하 등)이 아닐까 싶다. 둘 중 하나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밸런스를 맞추어서 두 분야를 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것이 그 이유로 생각한다.
아로마와 바디감, 단맛, (여기에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짠맛 등등은 커피의 맛과 취향을 결정하는데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아로마의 중요성은 코를 막고 커피를 마셔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바디감은 '묵직함' 내지는 '밀도'로 표현하면 조금 더 이해가 될 것이다. 단맛과 짠맛 등의 커피에서 나는 다른 맛들은 커피의 주된 맛은 아니지만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그때그때 사진 촬영 또는 안시 관측을 하면서 주변시로 보였던, 관측대상은 아니지만 밤하늘을 함께하고 있었던 천체들에 빗대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천체관측을 하면서 거슬리는게 몇 가지 있다. 광공해, 미세먼지, (날씨가 안좋다면) 구름, 안개, 비행기의 항로 등등이 있다. 광공해의 경우에는 장소에 종속적이다. 보통 대중교통으로 닿을 수 있는 관측지는 광공해가 어느정도는 존재하는 편이긴 하다. 관측지의 광공해는 커피를 내린 원두 자체의 결점과 매우 비슷하다. 어떤 카페에서 쓰는 원두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는 광공해처럼 계속 거슬리는 특성이 될 것이다. 미세먼지와 구름은 날씨에 종속적이기에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준 사람들의 실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원두를 썼더라도, 내리는 사람이 너무 잘못(원두에 특성을 살리지 못 하게) 내렸다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비행기와 같은 갑작스러운 방해요소는 커피의 잡맛과 비슷하다. 제일 뜬금없고 제일 짜증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갑툭튀해서 카메라를 설명해 준 선배는… 글쎄. 카페에서 함께 한 사람 내지는 카페 알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카톡 프사로 해 놓았던 표현이 나왔는데, 방문했던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면 아마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마치며
커피와 차, 디저트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깊게 향유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자신과는 너무 먼 분야라고 생각해서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천체관측이라는 취미는 다과를 즐기는것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지 않고 이색적이다. 천체관측에 어느 정도 입문을 한 쿠아 동아리원들에게는 어느정도 독창적인 취미를 향유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생각이 들기에, 이 글을 통해 커피와 차를 즐겨보는것은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 보고 싶기도 하였다. 만약 여기에 있는 글귀들이 어느정도 공감이 되지만 아직 커피나 차를 제대로 즐겨봤던 경험이 없다면, 한번 이의 맛과 감성을 탐구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